미리보기

채널 냥고 길라잡이: 보이지 않는 고양이 보기, 들리지 않는 라디오 듣기

어느날, 하늘에서 
라디오 한 대가 굴러 떨어졌습니다.

인도의 북부, 제썰메르에서였습니다. 저는 1박짜리 사막 투어에 도전하는 여행객이었고, 낙타의 네 굽을 빌려 사막에 입성하려는 참이었습니다. 드높고 맑은 하늘로부터 슈우우우--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검은 물체가 보였습니다. 인도인 가이드와 제가 얼어붙은 동안, 낙타는 세 걸음쯤 물러나면서 끄히루, 하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물체는 모래언덕에 귀퉁이만 튀어나온 채로 우리와 대면하였습니다. 유순한 놈이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낙마(落馬), 아니 낙낙타(落駱駝)의 고통을 맛볼 뻔하였습니다. 저는 재빨리 그 물체로 다가갔습니다. 
현무암에 흘림체로 새겨진 고대 마야 언어의, 유일한 길잡이 석판! 코발트해 바닥에 잠들어 있다가 자발적이고 신비한 힘으로 저멀리 명왕성까지 치솟아본, 그러다 심심해져 지구로 되돌아온 인어의 새빨간 발톱! 처럼 자못 진귀한 물건이기를 바랐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집어올린 그 라디오는 워크맨만한 크기의, 중고제품에 불과했습니다. 세상에, 하늘에서 떨어진 중고 라디오라니요? 
인도인 가이드 바리야 씨는 진지한 얼굴로 무엇이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눈치였습니다. 신을 조금도 믿지 않는 저로서는 그 뜻도 물론 짐작할 수가 없었지요. 단서는 딱 두 가지였습니다. 라디오 귀퉁이에 새겨진, 고양이 눈 모양의 로고. “채널 냥고 ON AIR”라는 글자. 
고양이 눈이야 금세 알아차렸지만 채널 냥고라...? 아리송한 느낌이었습니다. 구글 검색을 시도하고 싶었습니다만, 그곳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였습니다. 저는 라디오 전원을 켜보기로 했습니다. 고양이 눈 로고에 불이 들어오더군요. 이어 주파수 눈금이 떨리며,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취이익- 니야오, 지구별 고양이 여러분, 몹시 안녕하시온지요? 
저는 채널 냥고의 간판 디제이,  체셔입니다. 오늘도 취지직---- 테스트는 계속됩니다. 벌써 이 행성을 향해 라디오를 집어던진 지 185일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취이이CVRTW$^756이직이FD$이이익 

그 때 한 줄기 깔깔한 모래바람이 정면으로 불어왔습니다. 입자가 너무도 고와 재채기를 유발하는 바람이었지요. 등을 돌리며 터번을 휘둘렀지만, 재채기는 3분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파방해가 심해져서 방송이 들리지 않더군요. 지저분한 회색의 조절 바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취익취-----익- 지구별 애청묘가 갈수록 늘고 있는 데 대해 무한한 감사를 보냅니다. 저희 우주고양이연합은 모든 우주상의 고양이와의 교류를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겸손하게 앞발을 모으는 자세로 시도할 것입니다. 만일 처음으로 방송을 들은 고양이라면 다음과 같이 하세요. 이 라디오를 켜놓고 잠들기만 하면 됩니다. 참 쉽지요? 저희의 최신 기술인 ‘꿈 낚시질’을 통해 여러분의 소재가 파악되며, 즉시 애청묘 명단에 등재됨은 물론, 지극히 고양이적인 각종 혜택을 누리게 되실 것입니다. 네네. 라디오는 자유, 자유는 공짜입니다. 
 
저의 좌심방 우심실은 힘차게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방송하는, 고양이 라디오라니요! 그런 방송은 제 머릿속 외에는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낙타와 가이드를 계속 멍하니 세워둘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은 채 북진을 하였습니다. 저도 라디오 키드로서의 역사가 짧지 않은 편입니다만, [채널 냥고 ON AIR]는 색달랐습니다. 페스츄리와도 같이 한 겹 한 겹 이야기가 쌓이면서 하나의 판타스틱 월드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요. 
해질녘에 우리는 예정된 곳에 당도하였습니다. 모닥불을 피우고, 침낭 속에 들어가 무수한 별꼬리를 눈동자 속에 가라앉히자, 우리에게도 슬슬 잠이 찾아왔습니다. 
물론 머리 맡 라디오의 고양이 눈은, 푸르게 켜진 상태였습니다.